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925 연중 26주 금요일 - 단어가 가지는 힘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9. 26. 11:46

 

오늘 복음묵상은 제가 깨달았거나 체험한 내용을 나누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 보다 제가 하려고 하는 고민에 초대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한 단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의미가 지대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살기 쉽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성찰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소통하고 살아가는 것의 유익한 점에는 이런 의미화가 개인에게 가지는 힘이 적절하지 않게 발휘되는 일을 방지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라는 단어에 대해 제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한 것은 신학교에 갓 들어갔을 즈음 '이반 일리히의 유언'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부터입니다. 이반 일리히는 추기경 후보로 유력히 언급될 정도의 친 가톨릭 가문과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고, 교황 바오로 6세가 교황이 되기 전 그에게 로마에 남아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능력있는 신학자 이자 성직자였습니다. 가톨릭을 포함한 사회의 제도화가 가진 한계나 제국주의적 사고에 대해 반대하는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 스스로 성직자의 옷을 벗었으나 독신서약은 끝까지 지켰습니다. '학교없는 사회'라는 책을 통해 저자는 학교라는 제도에 대해 비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학교라는 제도가 교육의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공동성과 사회성을 함양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미 아이들은 경쟁과 계급이 만연한 작은 사회를 경험하며 거기 물들게 되고 만다고 비판합니다. 동시에 학교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차별화하고 있으며, 결국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모두 배움의 자율성에 침해받고, 학교라는 제도 안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권력과 차별이라는 세계에 노출되고 적응하게 되고맙니다.

 

저도 한동안 학교가 제도로서 가진 한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현실에서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신학교 수업시간에 이런 내용으로 발표를 했다가 동기 학사님들과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쉽지않은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올해 저는 생각만하고 있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가진 집체성이 해체되고, 가정이라는 공간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더 높은 점수를 얻는 시험의 경쟁이 기본적인 것을 아는가 라는 패스라는 절차로 완화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학교가 가진 개념을 이 어린 세대들은 우리와 달리 가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제가 이반 일리히의 책을 몇 년 만에 다시 꺼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제도가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소외되거나 격차가 벌어지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제도로서의 학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보기도 합니다. 이반 일리히는 제도로서의 학교를 비판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저는 제도화를 벗어난 학교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역시 회의적입니다. 이것이 이루어 지려면 사실은 학교가 제도회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제도화 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인데, 이런 사회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우리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대해 요즘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적어 본 것은, 처음 말씀드렸던 '하나의 단어가 나에게 가질 수 있는 지대함'의 예를 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 관심을 두고 열심히 고민해 보는 일은나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 때로는 삶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일로 초대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이 물음은 단순히 호칭에 대한 물음이 아닙니다. 이 물음에 대해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18)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루카 9,20)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

 

베드로에게 '그리스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같은 질문을 오늘 복음을 통해 저는 받는 것 같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는 단순히 영성책에서 교리반에서 성당에서 듣은 것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나에게 그리스도는 무엇이냐?" 라는 질문은 내 신앙 나아가 내 삶 전체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단어는 내 삶에 지대한 의미를 줍니다. 

 

나에게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는 일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는 이 것에 대한 깨달음이나 체험보다는, 간과하기 쉬운 이 일의 중요성에 대해 마음에 다시금 새기는 시간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새기는 시간으로 여러분도 오늘 초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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