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1011 연중 28주 주일 묵상 - 선택받는 다는 것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10. 11. 12:51

 

 

 

20201011 연중 28주 주일 묵상 - 선택받는 다는 것 -

 

오늘은 저에게 조금 특별한 날입니다. 아는 분의 결혼식에 가는 날이예요. 오늘이 특별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결혼식에 가는 것'입니다. 이게 뭐 그렇게 특별하겠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저게는 그렇습니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결혼식에 간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주말에도 계속 잔업을 해야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게도 친척이나 친구의 결혼식에 거의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에 와서 서품 받기 전까지는 당연히 수도원 식구나 친 가족이 아닌 이들의 결혼식에 간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아주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마침 수도권에 있어서 외출 시간에 맞추어 부랴부랴 강화도에서 다녀간 것이 유일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가는 결혼식은 정말 몇 년 만에 가는 결혼식이라 제게 특별합니다. 

 

다른 하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결혼식'이라는 겁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결혼식에 왜 가는지 이상하시지요? 실은 오늘 결혼하는 분이 말 그대로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2월에 서울에 와서 모임에 하나 들었는데, 그 모임은 그 시기부터 줌으로 바꾸어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면으로만 만나던 분들을 오늘 8개월 가까이 지나서 오늘 처음 직접 만나게 됩니다. 제 삶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오늘 결혼식이 그래서 특별합니다.  

 

결혼식에 가게 되면서 제게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무얼 입고 가야 하는 겁니다. 수도원 행사라면 수도복이나 클러지에 로만칼라를 하고 가면 되겠지만, 이런 일반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에는 어떻게 입고가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겁니다. 정장에 와이셔츠에 타이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수수하게 입고 가야하는건지, 아니면 클러지에 로만칼라에 정장을 입고가야 하는 건지. 게다가 정장이라면 서품식에서 입었던 겨울 정장 뿐인데 지금 날씨에 입고 가도 되는 건지.   

 

그러면서 오늘 복음을 묵상 하던 중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신 분들은 왜 그런지 아시겠죠? ^^

 


 

"성소를 어떻게 확신하셨어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수도원에 온 후 많이 들었던 대답하기 힘들었던 질문 중 하나입니다. 주변에는 기도 중에 응답을 받았다는 분도 계시고, 존경하는 신부님을 보고 결정했다는 분도 계시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란 분도 계십니다. 어른 신부님들 중에는 가난했던 시절 매일 계란을 먹고 싶어서 신학교에 왔다는 분도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제더 어려운 질문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선택받으셨네요?"

 

"네? 제가요?"

 

'내가 하느님에게 선택을 받았다고? 이런 내가?' 라는 생각만 들 뿐, 제가 무슨 특별한 사람이냐고 묻는 것처럼 들려서 괜히 몸이 움츠려들었습니다. 요즘 어딜가나 자존감 이야긴데, 아마 저도 자존감이 낮아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택받았다는 건 근사한 기분입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이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은 정말이지 하늘을 뚫을만큼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 하느님에게 선택받았다는 말을 듣고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오히려 몸이 움츠려드는 기분이 든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요? 여러분은 "하느님께 선택받으셨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선택받았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서,
내가 선택받을 준비가 안되었다고 느껴서,
왜 이제야 선택받았는가 해서,
선택받을 자격이 안되는 데 선택받은 것 같아서,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아니면 정말 실제로는 선택받았은 것이 아닌 듯 해서.

 

그런데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고 보니, 맙소사 모두가 하나같이 다 제게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랬구나' 하고 혼자 웃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으나 선택받은 이는 적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임금이 초대한 이들의 수가 적고, 마을 어귀에서 데려온 이들의 수가 많다고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사실은 임금이 첫번째 두번째 초대했던 사람들이 많고, 나중에 결국 동네 어귀에서 잔치로 데려온 이는 적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도 잔치에 가면서 저처럼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그다지 임금을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잔치에 갈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고, 처음 초대해 주지 않은 것에 실망했을 수도 있고, 자기가 올 자격이 아닌데 왔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마땅히 와야 하나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얼마되지 않은 잔치에 남겨진 이들은 두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초대를 듣고 따라왔고, 다른 하나는 잔치에 맞는 옷을 준비했다 입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부르심을 들을 마음을 항상 열어 두고 있었고, 잔치에 입을 예복을 사용할 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의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을 통해 그들은 마지막에 선택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 선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니라면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존재한다는 모든 것은 부르심을 받은 겁니다. 아직 제가 하느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말이 편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잔치에 마지막까지 남게 된 사람들 처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린 마음과, 하늘나라 걸맞는 옷을 준비하는 믿음의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도록 복음은 저를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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