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10620 연중 12주일 묵상 - 기적과 창조는 우리 바로 곁에 - 마르 4,35 - 41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1. 6. 21. 18:54



식품처럼 나에게 아픔의 유통기한도 표기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절망스러운 아픔속에 있을 때면 그 아픔 자체도 힘들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곤 합니다. 아픔이란 걸 많이 겪을 수록 익숙해져서, 그 힘든 기간도 줄어든다면 좋으련만... 우리가 삶을 사는 동안 늘어가는 경험은 어떤 아픔을 만날 때 오히려 그것을 더 깊게 하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더 햇깔리게 하고, 그것을 더 오래 붙들고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때면 흐르는 시간을 산다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희망도 힘을 잃어버리는 그런 두려움 안에서는 오늘 복음에서 만나는 창조나 기적 같은 놀라운 단어들도 빛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아픔의 시간을 꾸역꾸역 살다보면 어느새 멀어져 있는 아픔을 보며, '아 그래도 역시 아픔이 떠나가도록 하는 데에는 시간만 한게 없구나' 라고 인정하게 되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내 아픔이 떠나 간 자리에 뭔가 다른 것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빛나고 있는 창조와 기적을 그곳에서 만나곤 합니다.



얼마 전 오랜 친구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부부 모두 고등학교부터 알던 사이라,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함께 즐거워했던 일도 많고, 또 언제나 그렇듯 함께 아팠했던 이야기는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옆에 앉은 친구의 아이의 존재가 갑자기 쿵하고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이제는 훌쩍 커버린 그래서 우리의 대화를 옆에서 함께 웃으며 듣고 있는 그 아이가 갑자기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아, 너무 신기하고 이상하다. 이건 뭐지? 분명 이 친구들이랑 나는 옛날하고 똑같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아이는 어디서 와서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거지?'


그리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그 때 그 감정과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 예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체험하기 위해 내가 꼭 바람이 부는 호수에 갈 필요는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하기 위해 내 아픔이 지금 사라지는 것과 같은 특별한 일이 일어날 필요도 없다는 것도요. 그날 밤 그런 놀라운 일들이 아니라도,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친구의 아이에게서 저는 하느님의 창조와 기적을 보았습니다. 나와 친구들이 보낸 지나는 시간 속에 기쁨과 아픔이 지나간 그 자리에 이 아이는 어느새 커서 우리 옆에서 함께 웃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흐르는 시간을 산다는 것이 두려워 질 만큼 큰 아픔을 간혹 겪고 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아픔이 불현듯 계속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저는 또 그 앞에서 지난 경험과 함께 더 힘들어 하곤 할 겁니다. 그래도 오늘 묵상도 잊지 않고 기억할 겁니다. 하느님 창조과 기적의 권능은 어느 아픔이나 시간 앞에서 지거나 멈추지 않고, 시간이 지나 내가 아픔을 떠나 보낸 자리에 찾아보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먼 곳이 아닌 바로 내 곁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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