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사람과 방문하는 사람 -

광성보는 매우 역사적인 곳이자 강화도의 유명한 관광지예요. 한 켠에 바다를 끼고 이어 있는 유적지를 걸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제가 사는 신학원에서 차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가끔 산책이나 조깅의 반환점으로 삼는 곳이지요. 논밭을 가로지르며 오가는 길이 참 아름답습니다.
몇 일 전 오래 알던 수녀님들이 오셔습니다. 함께 그 곳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늦게 출발한 저는 먼저 간 그분들을 따라잡으려 혼자 광성보의 언덕길을 올랐었습니다.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웃으며 걷고 있었습니다. 햇볕 속에 웃는 소리가 이제 코로나가 끝났어, 여름이 오고 있어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
“어서 와, 무슨 사진을 걸음마다 찍니?”
할머니와 아빠와 함께 몇 걸음 먼저 언덕을 내려오던 엄마가 돌아서서 말합니다. 무릎을 꿇고 폰에 눈을 대고있던 아이가 벌떠 일어나 손쌀같이 달려 내려옵니다.
피식 하고 저는 웃었습니다. 얼마 전 로마의 작은 길을 걷던 기억이 났어요.
콩고 호주 콜롬비아 출신의 수도회 신부님들과 로마 골목길을 걷고있었습니다. 구경하며 걷는 동안 포즈를 잡거나 뛰거나 하며 우리는 연신 폰의 사진셔터를 눌러대고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폰 화면 너머로 3층 창문 밖으로 몸을 기대고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이 보였어요.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 저 사람은 여기 살고 있으니 우리가 사진찍고 다니는게 재밌게 보이겠구나”
그런데 똑같은 생각을 그 아이를 보면서 이번엔 입장이 바뀐 채 제가 하고 있는게 웃겼습니다.
...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렇구나. 깊은 영성 속에 사는 분들은 정작 그 사는 곳에 대해 별로 신기해 하거나 소란스레 이야기 하지 않겠구나. 나 처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나 그게 신기해서 한 번 체험하고선 내가 몇 궁방을 갔느니, 내가 어떤 상태가 되었느니, 내가 어떤 이야기를 들었느니 하며 들떠서 말하게 되는 거구나.”
그리고 이어 생각했어요.
“그런 체험을 하게 되면 정말 감사하면서 동시에 정말 더 겸손해 져야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더 올라가자 점점 따가워 지는 햇볕 저 먼 발치서 수녀님들이 보였습니다. 함께 구경을하고 내려오는 길에 이야기 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했더니 역시나 지체 없이 놀림이 왔습니다.
“ 오~ 역시 신학원장 ! 거기서 그런 걸 생각하신단 말이예요?”
저도 질 수 없죠.
“ 무슨 말씀이세요 수녀님들도 다 그렇게 사시면서.”
“하하하”
...
가끔 큰 사랑을 체험하고 나면 그것에 대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나눔을 하는데 온통 정신을 뺏깁니다. 혼자 조용히 간직하려는 때 조차도 제 마음 속은 온통 달음박질입니다. 들떠서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아이처럼요. 앞으로 그럴 때가 또 있으면 보다 더 감사하고 보다 더 겸손해 져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사랑은 제일 큰 계명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계속 사는 사람과 사랑을 방문한 사람의 모습은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살든 그곳을 방문하든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계속 사랑 체험, 많은 감사, 깊은 겸손이 이어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230608 연중 9주 목 마르 12,28 - 34 ‘사는 사람과 방문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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