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401 사순5주 수요일 묵상 - 자유로워지는 방법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4. 1. 11:11

012

 

 

저에게 매일 키우는 저의 아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보는 우리 아이들은 있지요. 우리 수사님들과 함께 사는 두 곳의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방문해 가끔씩 만나는 건 설레는 일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섭섭한 일이기도 합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변해 있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예요.

이번에 아이들의 변화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딱지치기하고 밥먹고 얘기하고 재밌게 놀다가 ' 나이제 간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큰 형아 중 한 명이 안겨서 아쉽게 인사를 하고는,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현관까지 따라나와서 마구 손을 흔들어 주던 녀석이 말입니다.

뭔가 컴퓨터에 패배 한 느낌이랄까요.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을 갔습니다.' 를 떠올린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이었을까요? 어쨌든 나는 이제 그 아이 안의 한 자리를 컴퓨터에게 내 주어야 했습니다.  

제가 예전 실습하며 같이 살던 때에 어린 아이들은 저에게 많이 의지했었습니다. 공부할 때, 놀 때는 물론, 특히 잠잘 때 저의 구연동화는 당대 최고의 경쟁률을 자랑했었지요.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조금씩 더 다양한 것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의지할 수 있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뭐 조금은 섭섭한 일이기는 하지만 또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갈까 설레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에 의지하며 살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성장한 저는 그 아이들보다 더 다양한 것들에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의지할 수 있게 되었을테니까요. 그리고 분명 그 중에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해 주시는 "내가 종으로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고, 또 유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것의 종인 줄도 모르고 지내고 있을 것"이 있을테니까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먹는 것'입니다. 웃기게 들리실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년까지의 제 삶과 비교해 올해부터의 제 삶애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 '먹는 것'입니다. 작년까지 있었던 양성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저는 저녁에 무언가가 먹고 싶으면 - 밖으로 나가 조금 걸어가는 수고만 들이면, 물론 지갑이 차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 먹을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피부로 느낄수 있는 가장 큰 변화입니다.

밤에 사먹는 것이 아예 허락되지 않았던 작년까지와 선택권이 있는 지금과의 두 가지 상황에서 '먹는 것'이 저에게 갖는  의미는 매우 달랐습니다. 먹는 자유를 얻었지만 저는 그것에 조금 더 의지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묵상 중에 이걸 보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살펴보니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운동, 음악, 영화, 기도 등등 잔잔히 살펴보니 지금 제가 종살이 하고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자유가 많으니 오히려 종살이 하는 것이 더 늘어나게 되어버린 겁니다. 자유는 선택할 여지가 많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양성소에 피양성자로 있던 제가 지금의 저보다 더 자유로웠다고 여겨지는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가 조금 가지게 되면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민감하게 느낍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가지다 보면 가진 것이 많아서 자유롭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종살이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결국 그것에 의지하게 되고 맙니다. 그런게 어린 아이들 보다 어른이 더 많은 종살이를 하게 되는 이유이구나 생각듭니다.

그런데 제 삶에서 가진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워 지는 때를 하나 발견합니다. 그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 입니다. 오랜만에 아이들 보러 갈 때 슈퍼마켓에서 이것저것 과자를 바구니에 담다 보면, 예쁜 과자들 종류는 또 그렇게도 많은지, 제 지갑이 말끔히 비어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자식이나 조카가 있는 분들은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요? 결국 자유는 사랑에서 온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ㄴ)

예수님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 그래서 진리를 깨달아 자유로워 지는 길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자식이나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어떻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 잘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그런 마음에서 도망치는 곳이 바로 먹는 것, 운동, 음악, 영화, 기도 들이고, 그래서 거기에서 저는 종살이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정말 의지해야 할 곳은 예수님의 십자가, 그 사랑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자유로워 지는 방법입니다.

오늘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거나 다른 것으로 도망쳐 종살이 하는 걸 멈추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혹시나 그 사랑이 그들을 통해서 내가 충분히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죠.

 

 

 

사순5주 수요일 독서 및 복음읽기 (가톨릭굿뉴스)

 

 

#가톨릭 #묵상 #기도 #복음 #말씀 #독서 #천주교 #강론 #매일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