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루카복음

202112123 대림 4주 목요일 루카 1,57-66 "하느님의 일들과 소명에 대한 응답"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1. 12. 24. 23:46

202112123 대림 4 목요일 

루카 1,57-66 "하느님의 일들과 소명에 대한 응답"

 

 

어제는 천사와 엘리사벳과 마리아 사이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묵상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는 천사와 즈카르야와 마리아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예언서가 줄곧 말해 왔던 일들이 일어나는데에 즈카르야와 성모님은 어떻게 다르게 반응했는지,   다른 반응이 어떤 일들이  따르게 했는지 돌아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천사는 즈카르야와 성모님에게 나타나 그들이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세례자요한과 예수님의 출생예고를  것입니다. 그런데  예고와 이어지는 대화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에는 다소 제게 공감이 되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점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즈카르야가 천사를 만난 것은 성소에서 혼자였지만,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홀로 아무도 모른  천사를 만났습니다. 둘째, 천사는 성소  분향으로 찾아가 제단 오른쪽에서서 즈카르야와 이야기 했지만, 천사는 마리아를 만나기 위해 나자렛이라는 고을의 마리아의 집으로 찾아들어왔습니다. 셋째, 천사가 말한 아기를 가질 것이라는 예언은 즈카르야에게는 청원에 대한 응답이었지만, 천사의 예언이 마리아에게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 천사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는 즈카르야의 말에 자기 말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벙어리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있겠습니까?"라는 마리아의 말에 천사는 성령께서  일을 이룰 것이며 증거로 엘리사벳을 보라며 하느님께는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친절히 설명해 줍니다. 바로  네번  장면이 저에게는 조금 공감 되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둘다 비슷하게 천사의 말에 믿지 못하겠다고 대답하는데, 천사가 즈카르야에게는 비교적 친절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가 공정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대답을 희랍어 본문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그들이 대답한  중에 "제가 그것을 어떻게   있겠습니까?"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라는 공통된 표현에 대해 원문의 의미를 잠시 찾아보았습니다. 즈카르야이 대답은 희랍어로 "Κατ τί γνώσομαι τοτο γ"입니다. 여기서 알다는 의미의 γνώσομαι 그노소마이가 1인칭 미래 단수 동사 그대로 쓰인 곳은    있습니다. 그곳은 코린토 1 4 19 입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변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대답한 의미는 "제가 어떻게 주님의 뜻을 확인할  있겠습니까?"라는 확인에 대한 문제 제기였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대답은 희랍어로 "νδρα ο γινώσκω" 입니다. 여기서 알다는 의미의 γινώσκω 역시 1인칭 현재 직설법이 그대로 쓰인 곳은  7곳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0 14, 15, 27절에서 절에서 양과 목자가 서로   하느님과 예수님이 서로 안다라는 비유에서 쓰이고 있고, 사도행전 19 15절에서는 흥미롭게도,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바오로의 이름으로 구마를 하려 하자 악령이 달려들어 상처를 내며 "나는 예수도 알고 바로오로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라고 묻는 장면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즈카르야의 경우와 같이 코린토 1 13 12절에서 바오로가 사랑에 대해 한참을 노래하며 "내가 지금은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곳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모님의 대답은 "자신이  일을 이룰 준비가 안되었다" 자신의 자격에대한 문제 제기였습니다.

 

 

 

 사람 모두 천사의 말에 놀랐고 있을  없는 일이라 여겼지만, 이에 대해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확인할  있는지에 관심이 있었고 마리아는 자신이 자격이 안된다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대답이었기 때문에 저는 불공평하다는 의문을 가졌엇지만 오늘 이렇게 마음먹고 찾아보니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차이가 있었습니다. 

 

찬찬히 돌아보니 제가 주님께 드려왔던 응답도 마찬가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응답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지나 돌아보면 나의 응답의 내용은 미묘하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났던 것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하느님의 일들과 소명을 만났을   자신에 대해 겸손히 돌아보는 자세 보다는 하느님께 따지거나 불공평하다고 하소연하는 일도 많았던  같습니다.  나는언제 성숙하나 고민도 커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요즘 복음처럼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처럼 계속해 묵묵히 하느님의 뜻에 따르다 보면 엘리사벳 처럼 잉태도 하게 되고 즈카르야 처럼 막혔던 말문도 열리게 되리라 희망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 성탄을 목적에  지금  희망은  빛나는  같습니다. 여러분께서  글을 읽을 쯤이면 모두 성탄 인사를 나누는 때가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희망의 빛이  밝아지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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