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421 부활2주 화요일 묵상 - 위로부터의 태어남의 의미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4. 22. 22:32

 

 

 

" 신부님 어제 오늘 복음에 계속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라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매번 묵상gk게 되는 구절인데, 이거 참, 어제 오늘은 정말 묵상이 잘 안되네요."  

두명 만의 간촐한 식사. 한 사람은 우유에 시리얼, 다른 한 사람은 김치찌게에 고등어 찜을 먹는 만큼이나 아침식사에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질문이긴했습니다.

" 리차드 신부, 다 이해하고 알려고 하는 것도 교만이야. "

선배 신부님은 아는 분은 다 아는 당신 만의 독특한 어조로 농을 하시고 웃으셨습니다. 그 어조로 '대강철저'라고 외치실 때면 여기 누구도 웃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성경이 문제집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책이라면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묵상의 답답함도 덜할 것이고, 매일 마음 한켠에 돌처럼 달고 다니는 듯한 사제들의 강론 부담이 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러면 사제들이 할 일이 없어지거나 묵상할 필요가 없어지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렇지는 않네요. 신앙생활이 성경을 공부하거나 삶의 평가하는 일만인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을 그 쓰여진 배경을 무시하고 인간이 다 안다는 듯 나의 생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되죠.  아니면 반대로 아예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도 곤란합니다. 그때 우리는 조금 과장한다면 21세기 이단종파의 교주가 되고 말거예요.

성경에도 예수님께서 하늘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그 뜻을 감추신다고 하시며 교만을 경계하도록 하셨고, 예수님 생전에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닫지 못했느냐'라고 하시고, 부활 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처음부터 다시 다 알려주시며 부족한 우리가 깨닫도록 도우기도 하십니다.

 

그러니 결국 겸손한 마음으로 알려고 애쓰며 깨우쳐 주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몫일 것입니다. 오늘 그래서 묵상이 잘 되지 않는 김에  그동안 궁금했던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에서 '위로부터'라는 단어에 대해 작정을 하고 좀 찾아 보았습니다.

'위로부터'의 원단어는 그리스어로 ἄνωθεν입니다. '아노센'이라고 읽습니다. 여담이지만 일본말로 '저기, 선생님!"하고 부를 때 '아노, 센세"라고 하는데 비슷하게 들리네요. 이 단어는 신약에서 13번 나옵니다.  '위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라는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오늘 복음은 한국어로 '위로부터' 태어난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있습니다. 한 30가지 영어성경들을 봤더니 20개 정도는 '다시'태어난다로 되어 있고, 10개 정도에는 '위로부터'태어난다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ἄνωθεν이 사용된 곳을 하나 하나 찾아봤습니다. 다음과 같이 한국어로 번역 되어있습니다.

1. 마태 27,51 에서는 성전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지는 장면을 묘사하며 '위로부터' 라는 뜻으로 쓰임.

2. 마르 15,38 에서는 성전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지는 장면을 묘사하며 '위로부터' 라는 뜻으로 쓰임.

3. 루카 1,3 에서는 루카복음을 시작 할 때 나오는 구절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에서 '처음부터'의 뜻으로 쓰임.

4. 요한 3,3 에서는 니코데모에게 하시는 말씀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에서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임.

5. 요한 3,7 에서는 니코데모에게 하시는 말씀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에서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임.

6. 요한 3,31 에서는 하느님을 묘사하며 하는 말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에서 '위로부터' 라는 뜻으로 쓰임.

7. 요한 19,11 에서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하시는 말씀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에서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임.

8. 요한 19,23 에서는 예수님을 못 박기 전 옷을 벗겨 찢어 나누는 장면에서 그 옷을 묘사하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에서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임.

9. 사도행전 26,5 에서는 방로가 아그리파스 임금에게 자신을 변론하는 장면에서 하는 말 "그들이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있으므로"에서 '처음부터' 라는 뜻으로 쓰임.

10. 갈라 4,9 에서는 바오로가 사람들을 회개를 권고하며 하는 말 "그것들에게 다시 종살이를 하고 싶다는 말입니까?"에서 '다시'라는 뜻으로 쓰임.

11. 야고 1,17 에서는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에서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임.

12. 야고 3,15 에서는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에서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임.

13. 야고 3,17 에서는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라는 구절에서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임.

정리하면 하늘이나 하느님이 계시는 곳을 뜻하는 곳이  일곱 군데, 위치적으로 위쪽을 뜻하는 곳이 세 군데, 순서상으로 처음부터를 뜻하는 곳이 한 군데, 시간상으로 오래 전부터를 뜻하는 곳이 한군데, 반복되는 다시를 뜻하는 곳이 한 군데 였습니다.

 

어쨋든 ἄνωθεν 과 연결되어 태어난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대략 하느님으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이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친절히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온갖 좋은 선물과 완전한 은사가 온다고 합니다. 또한 위에서 오는 지혜는 순수, 평화, 관대, 유순, 자비와 좋은 열매가 맺어지게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위에서 난 사람은 다시 위로 들어올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이 생각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이 아닌 하늘이 생각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요. 오늘 복음에서도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른 이를 위한 희생, 사랑하는 연민의 마음, 그리고 용기는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를 잇는 다리일 것입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거나 깨달을 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어떻게 드러나는 지에 대한 단서는 이렇게 얻은 셈입니다. 

 

묵상이 잘 되지 않을 때 억지로 제 생각으로 이끌어가서 뭔가 깨달은 것 처럼여기는 것보다 그냥 이렇게 조금 공부 해 두면, 다음에 언젠가 하느님께서 원하실 때 더 좋은 묵상으로 이끌어 주시겠죠?

ἄνωθεν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되도록, 오늘 하루 저의 삶에서 희생 연민 용기를 염두에 두며 지내보려합니다. 

 

 

 

 

 

오늘 독서 및 복음 읽기(가톨릭 굿뉴스)

 

#가톨릭 #묵상 #기도 #복음 #말씀 #독서 #천주교 #강론 #매일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