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423 부활 2주 목요일 묵상 - 아빠가 아들에게서 위로받을 수 있는 이유, 하느님의 발자국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4. 23. 13:50

 

 

 

수도자로서 또 사제로서 지내다 보면 많은 분들이 면담이나 상담을 하게 되거나 또는 삶을 나누어 주시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말씀하시는 분들을 잘 듣고 그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렇게 듣다보면  '그 처지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라는 종류의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때마다 마음 속 한켠에서 뜨끔해지곤 합니다.

'정말 내가 잘 이해를 하고 있는 건가?'

누군가의 입장이 실제로 완전히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입장을 오롯이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투사해서 다른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과장이 되고나서야 예전에 모셨던 과장님의 어떤 부분이 이해가 된다거나, 부모가 되고 나서야 옛날 자신의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거나 하는 일을 우리는 늘상 경험하죠.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가 함께 갖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경험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가진만큼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나와 세계 ,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 친구와 친구 등의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과 맺어가는 관계에서는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과의 공통된 어떤 것만큼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하느님을 만나가게 됩니다. 이것을 그리스도교의 교부들은 Vestigium Dei (하느님의 흔적 또는 하느님의 발자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졌을 때부터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그 하느님의 흔적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요즘 복음과 독서가 보여주는 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제자들의 삶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장면들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건 이미 그들 안에도 하느님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느님의 흔적을 복음을 묵상하면서 최근에  어느 지인 분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수사님, 실은 제가 몇 년 전에 아주 어려운 시기를 겪었은데,  그 시기를 이겨냈던 것은 주변에 있어 주었던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지인 분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제게 정말 큰 힘이 되어 준 사람들 중 한 명이 우리 막둥이였습니다. 최근에도 우리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 주던 길에 라디오를 듣다가 제가 뭐라고 했는데, 그 때 그아이가 제게 해 준 말이 지금까지도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이나 감동 같은 공통된 경험들은 이렇게 때로 우리 어른들이 어린 아이에게서도 큰 깨달음이나 위로를 얻게 해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은 순간 좌절이나 실망 그리고 냉담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도 자주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 저는 하느님은 이미 우리 모두 안에 하느님을 다시 찾고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의 발자국을 남겨 두셨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들로부터 깨달음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오늘 하루 저는 싫고, 이해 안되고, 미운 사람들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놀이를 해볼까 합니다. 뭐 밑져야 본전이고, 발견하면 대박인 이득 일관인 보물찾기 일테니까요.

 

그대 안의 Vestigium Dei  하느님의 흔적. 하느님의 발자국.

 

 

오늘 독서 및 복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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