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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1 사순5주 수요일 묵상 - 자유로워지는 방법 -

저에게 매일 키우는 저의 아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보는 우리 아이들은 있지요. 우리 수사님들과 함께 사는 두 곳의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방문해 가끔씩 만나는 건 설레는 일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섭섭한 일이기도 합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변해 있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예요. 이번에 아이들의 변화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딱지치기하고 밥먹고 얘기하고 재밌게 놀다가 ' 나이제 간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큰 형아 중 한 명이 안겨서 아쉽게 인사를 하고는,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현관까지 따라나와서 마구 손을 흔들어 주던 녀석이 말입니다. 뭔가 컴퓨터에 패배 한 느낌이랄까요.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을 갔습니다.' 를 떠올린다면 너무 오버..

20200322 사순4주일 묵상 -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 -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들이 나에게 어려운 시간을 줄 때 우리들이 하는 큰 반응 중 하나는 주변의 작은 따뜻함을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공적 마스크의 정착 이후 마스크와 관련하여 약국에서 일어나던 엄청난 신경질적 반응들이 없어진 걸 보면 실제 생기는 어려움 보다 그것과 관련된 두려움 불안이 더 크게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요?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여 다시 유명하게 된 컨테이젼이라는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봤습니다. 본 것 같았지만 대략 그런 영화가 있었다는 기억 정도만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새로웠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재난 영화인데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마리옹 꼬띠아..

20200319 사순 3주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묵상 - 서로의 처지에서의 거리 -

어제 필리핀에서 선교실습하던 시절 알게 된 저희 수도회의 몇 필리핀형제들에게 안부인사를 보냈었습니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제가 필리핀에 있던 해에 대통령선거가 있었어요.) 필리핀 북부 루존섬을 봉쇄한다는 기사를 보고선 형제들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 형제들과 각각 대화를 하는동안 한가지 특별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북부 루존지역에 있든, 수도 마닐라에 있든, 중부 비사이야 지방에 있든, 아니면 남부 민다나오에 있든 간에 저마다 대화의 말미에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걱정과 부탁한 기도가 있었어요. 그건 가난한 이들, 길에서 하루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 노숙자 들에 대한 걱정들이었어요. 그때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선 큰 감정이 있었어요. 만약 제가 필리핀에 가서 길..

20200317 사순3주 화요일 묵상 - 제가요? -

회사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저를 이웃과 또 하느님과 멀리하게 하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것들 중 특별히 보이지도 않고 알아채기도 어려운 어떤 태도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요?' 겸손은 조금이나마 몸에 배어 가는지는 몰라도 깊은 속에서 여전히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뭐 이정도면 잘 살진 못해도 그럭저럭 살고 있지, 나는 뭐 그렇게까지 문제는 없는데, 게다가 나는 쉽진 않지만 용서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어느날 죽어서 지옥에 가는 내용의 코미디 드라마를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어서 지옥문 앞에 서서도(이런 지옥의 이미지는 개인적으로는 싫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제가요?" 오늘 복음을 묵상 하면서 '용서 할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는..

20200315 사순3주일 묵상 - 목마름으로 부르심 나는 아직 목마른가 -

오늘 아침 수도원 공동방 청소를 하는 중에, 이런 저런 소식들과 복음 말씀에 대해 생각하다가 전자렌지 안쪽을 닦고 있을 때였습니다. 꽤 안쪽에 말라 붙어 있는 것을 무심코 물수건으로 몇 번을 문질러 댔지만 잘 닦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멈추어지자 옆에 있는 정수기가 보였고, 뜨거운 물을 조금 받아 두어번 문지르자 애를 먹이던 그 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잠시 뭠처 서서 한참을 멍청하게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던 제 모습에 잠시 웃었습니다. 그러곤 마음에서 굳어버린 감정들을 말끔히 닦아내는 것도 이런 뜨거운 생명의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사랑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뜨거운 사랑'의 그 뜨거움은 끓는 물이나 닳아오른 철과 같은 그런 뜨거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다..

20200312 사순2주 목요일 묵상 - 마음이 어디로 옮겨 가는지 -

오늘 독서와 복음은 저에게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라는 1독서의 말씀이 깊이 와 닿습니다. 오늘 묵상 중에 마음이 움직이는 두 가지 길을 보게 되었어요. 하나는 제 뜻과는 달리 제 멋대로 움직이는 마음의 길입니다. 제가 소중한 곳에 머물게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제 마음은 어느새 엉뚱한 곳에 가 있기 일쑤입니다. 하느님이나 좋은 덕 안에 마음을 두고자 애를 쓰다 문득 정신 차려보면, 제 마음은 어느새 제 멋대로 후회 아픔 미움 같은 것들에 가 있습니다. 또 욕심 같은 것들이 생기는 어느 날은 그런 것에서 마음을 돌리려 애를 스지만 또 그런 때면 오히려 제 마음은 더 거기에 깊이 자리하..

20200308 사순2주 주일 묵상 - 불공평한 세상을 만나는 방법 -

어려분 삶에서의 중요한 가치들 중 공평함은 몇 번째 정도에 있나요? 저에게는 꽤 높은 순위에 있습니다. 내가 불공평하게 대우받을 때 느끼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저는 저 나름대로 매우 신중하게 사람들에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거룩하게 변모 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도 저의 눈은 함께 올라가지 못한 다른 아홉명의 제자들에게 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세 사람만이 예수님께 선택되어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아홉명의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면서 자기들끼리 누가 더 높은 사람인가로 토론할 정도였으니 그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자기 몫을 수행하고 있..

2020년 3월 1일 사순 1주일 - 원하는 것 참을 때 -

요즘 여러분들께서 미사를 못하게 되니 너무 힘들고 허전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십니다. '미사의 힘으로 사는데...'라는 말씀도 적잖이 듣습니다. 생각보다 성사의 힘으로 여러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서품을 받고 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누군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조금 더 생겼다'는 점입니다. 서울 수유동에는 몸과 마음이 어려워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살며 그룹홈을 하시는 저희 수도회 평수사님이 계세요. 토요일 저녁 미사를 드릴 수 없는 그곳에 그 수사님의 일도 도울겸 미사도 함께 드릴겸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생각지도 않게 아이들도 함께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벌써 고등학생 나이가 된 이 아이들을 보면 제게는 제일..

2020년 2월 27일 재의 수요일 다음 목요일 [죽음보다 죽음에 이르는 길이 더 두려운]

죽음이라는 사건은 엄청나고도 급격한, 철저하게 완전한 소멸입니다. 생각과 감각과 시간 자체가 모두 찰나의 한 순간에 모여 없어지는 것. 달리 살았으면 했던 삶과 비교할 것도, 하지 말았을 것을 하고 후회할 것도, 이제 끝이라고 행복해 할 것도 없는, 그 모든 것 의미 자체를 잃어버리는 절대적 찰나의 사건이죠. 그렇기에 어느 교회 학자는 '그 찰나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수 많은 죽음들을 보며 저 역시 자신의 죽음을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기쁜 날도 많았지만 우울한 날도 많았던 삶이었기에 저는 죽음이 그렇게 두렵진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또 그렇게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이상한 죽음에 대한 양가감정을 어느날 이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