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93

20200421 부활2주 화요일 묵상 - 위로부터의 태어남의 의미 -

" 신부님 어제 오늘 복음에 계속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라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매번 묵상gk게 되는 구절인데, 이거 참, 어제 오늘은 정말 묵상이 잘 안되네요." 두명 만의 간촐한 식사. 한 사람은 우유에 시리얼, 다른 한 사람은 김치찌게에 고등어 찜을 먹는 만큼이나 아침식사에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질문이긴했습니다. " 리차드 신부, 다 이해하고 알려고 하는 것도 교만이야. " 선배 신부님은 아는 분은 다 아는 당신 만의 독특한 어조로 농을 하시고 웃으셨습니다. 그 어조로 '대강철저'라고 외치실 때면 여기 누구도 웃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성경이 문제집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책이라면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묵상의 답답함도 덜할 것이고, 매일 마음 한켠에 돌처럼 달고 다니..

20200420 부활 2주 월요일 묵상 - 많은 것을 담는 작은 것 -

오늘 아침 미사 중 알렐루야를 바치다가 문득 이제 사순시기가 끝나고 부활시기가 되었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사순시기 동안의 전례 중에는 종을 친다거나 대영광송을 바친다거나 알렐루야를 노래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사순의 의미를 깊이 느끼고 기억하기 위해서 입니다. 신학교 전례수업 시간에 신부님께서 쉬지 않고 반복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미사 전례 중에 경본에 쓰여 있는 것들 단어 하나라도 함부로 바꾸면 안됩니다. 문장 뿐만 아니라 단어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성직자 수도자들과 신학자 평신도 들이 피를 흘리고 땀을 흘렸는지 아시죠? 단어 하나를 잘못 바꾸면 우리가 믿는 교의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잘 알려진 필리오케 논쟁이 있지..

20200419 부활2주일 묵상 - 부활, 온전히 받아들인 것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고등학교 시절 공부, 친구, 학원, 운동 등 그 시절 저의 삶에서 중요한 일들이 여럿 있었지만, 제가 뚜렷한 목적을 갖고 하고 있었던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시절 종교를 가졌던 목적은 다른 것들에 비해 뚜렷했습니다. 올바른 삶, 가치있는 삶을 배우고 또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 제 주변 어디에서도 그것을 제가 납득할 만큼 잘 알려주거나 보여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당은 강론시간, 교리시간, 또 교리선생님이나 친구들과 노는 시간에도 그런 이야기나 나눔을 할 수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그곳은 그 시절 저에게 신세계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이라면 그것은 저에게 그리 가까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부활절이라는 대축일은 성탄절처럼 휴일도 아니었고, 게다가 평일인 성삼일..

20200414 부활팔부 화요일 - 수도자의 얼굴은 어때야 하나요? -

아침 조회를 시작하시는 차장님의 얼굴은 굳어있었습니다."어제 부장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회사 본관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보는 곳이 우리 부서인데, 우리 부서 사람들 얼굴이 너무 어둡고 무섭다는 피드백이 다른부서로부터 많답니다. 오늘부터 표정에 신경쓰세요. 밝은 얼굴로 일합시다."재무 관리부서라는 곳은 원래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기 어려운 곳입니다. 제가 입사하기 겨우 몇 년 전만 하더라고 여러 현업부서의 계약직 행정사원들이 재무전표를 들고 와서는, 하루도 울고 가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여기선 작은 실수 하나라도 틀리면 결재를 안해주는데, 그 사원 입장에서는 그런 작은 실수 때문에 다시 자기 부서로 돌아가 수정해서 다시 뽑아서 그걸 대리, 과장, 차장, 부장님까지 다시 일일이 결재를 받아 ..

2020년 4월 6일 성주간 월요일 묵상 - 하나라도 충분히 보고 있었나 -

예전 다니던 회사에서는 매년 여름이 되면 전국의 신입사원들을 한데 모아 몇 일동안 큰 행사를 했습니다. 그 행사 중 하루 밤에는 초청가수의 공연이 있었고, 넓은 야외에 앉아 기다리던 우리 모두의 손에는 돌돌 말린 리본같은 도구들이 주어졌어요.공연이 시작되자 여러 초청가수들의 노래와 동기들의 함성 소리는 점점 넓은 밤하늘을 가득 채워갔고, 그 하늘은 여기 저기서 던지는 이런 저런 색색의 리본이며 폭죽들로 쉴새 없이 잘게 쪼개어지곤 했습니다. "아잇, 왜 다 끝나고 나서 내 머리에 뿌리는데?, 퍽" 조금만 더 있다가 던져 올려야지라고 미루며 기다렸던 그 결정적인 순간은, 공연이 끝나고 일어서던 동기가 왜 자기 머리에 쓰레기를 버리냐고 저의 등짝에 스파이크를 날리는 결정의 순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20200403 사순5주 금요일 묵상- 내가 하는일을 제일 못보는 사람 -

⠀ ⠀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오" 라는 유다인들의 대답에서 존경스러운 그들의 깊은 믿음과 함께 안타까운 그들의 닫힌 마음이 보입니다. ⠀ 한참 지나서야 겨우 나는 어떤가 하고 성찰합니다. ⠀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제일 모르는 사람은 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 ⠀ 사순5주 금요일 독서 및 복음(가톨릭 굿뉴스)가기 ⠀ ⠀ ⠀ #가톨릭 #묵상 #기도 #복음 #말씀 #독서 #천주교 #강론 #매일미사

20200401 사순5주 수요일 묵상 - 자유로워지는 방법 -

저에게 매일 키우는 저의 아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보는 우리 아이들은 있지요. 우리 수사님들과 함께 사는 두 곳의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방문해 가끔씩 만나는 건 설레는 일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섭섭한 일이기도 합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변해 있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예요. 이번에 아이들의 변화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딱지치기하고 밥먹고 얘기하고 재밌게 놀다가 ' 나이제 간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큰 형아 중 한 명이 안겨서 아쉽게 인사를 하고는,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현관까지 따라나와서 마구 손을 흔들어 주던 녀석이 말입니다. 뭔가 컴퓨터에 패배 한 느낌이랄까요.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을 갔습니다.' 를 떠올린다면 너무 오버..

20200322 사순4주일 묵상 -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 -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들이 나에게 어려운 시간을 줄 때 우리들이 하는 큰 반응 중 하나는 주변의 작은 따뜻함을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공적 마스크의 정착 이후 마스크와 관련하여 약국에서 일어나던 엄청난 신경질적 반응들이 없어진 걸 보면 실제 생기는 어려움 보다 그것과 관련된 두려움 불안이 더 크게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요?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여 다시 유명하게 된 컨테이젼이라는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봤습니다. 본 것 같았지만 대략 그런 영화가 있었다는 기억 정도만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새로웠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재난 영화인데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마리옹 꼬띠아..

20200319 사순 3주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묵상 - 서로의 처지에서의 거리 -

어제 필리핀에서 선교실습하던 시절 알게 된 저희 수도회의 몇 필리핀형제들에게 안부인사를 보냈었습니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제가 필리핀에 있던 해에 대통령선거가 있었어요.) 필리핀 북부 루존섬을 봉쇄한다는 기사를 보고선 형제들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 형제들과 각각 대화를 하는동안 한가지 특별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북부 루존지역에 있든, 수도 마닐라에 있든, 중부 비사이야 지방에 있든, 아니면 남부 민다나오에 있든 간에 저마다 대화의 말미에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걱정과 부탁한 기도가 있었어요. 그건 가난한 이들, 길에서 하루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 노숙자 들에 대한 걱정들이었어요. 그때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선 큰 감정이 있었어요. 만약 제가 필리핀에 가서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