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년 2월 20일 연중 6주 목요일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2. 20. 00:36

 

 

 

차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물론 나쁜 것이지만 이것보다 더 우리에게 도전으로 다가오는 차별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내가 기대한 것과 비교해서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시당하는 사람이 입장에선 더 억울한 노릇입니다. 차별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당최 자신이 아닌 어떤 것과 자신을 비교해 대니, 이건 어떻게 스스로가 해명하거나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무시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습니다.

 

차별을 받으며 살고 계십니까? 그리고 차별을 하며 살고 계십니까? 저는 둘 다 인 것 같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도 수도원에서도 두 가지 차별을 다 받았습니다. 물론 저도 두 가지 차별을 다 하며 살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회사나 수도원뿐만이 아닙니다. 가족 안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딜 가나 나는 상대방을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견주어 보거나,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모습과 견주어 보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걸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건 저 스스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보게 됩니다.

 

오늘 수도원 점심메뉴가 오리 국이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오~ 지금까지 먹어본 오리 국 중에 제일 맛있어요."라고 하며 식사를 준비하신 분께 엄지척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묵상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맛있다는 것을 표현할 때 많은 경우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라거나 '다른 사람이 한 것보다' 라거나 '제가 만든 것보다'라는 등의 비교하는 표현을 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 내가 찬사의 말을 할 때나 내가 그런 말을 들을 때 이미 나에게는 무엇과 비교하며 말하는 습관이 강하게도 붙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1독서의 야고보서 2정 5절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여러분이 부자들에게 억눌림을 당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교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비교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묶어놓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교에 따른 차별의 의미를 뒤엎으셨습니다. 그런 마음이라야 이어 나오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라는 계명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그리스도(베드로가 기대했던)와 비교하고 차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가차 없이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꾸짖음을 듣고 맙니다. 혹은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로 생각하는,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신을 비교하며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자 하는 베드로의 교만한 마음을 뚫어 보신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저 자신에게서도 그런 교만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만나는 사람들을 단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나의 기대와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향기를 맡아 줄 겁니다. 오늘 먹는 음식들 중 단 하나라도 있는 그대로의 맛을 느껴줄 작정입니다. 그리고 하루 중 단 한순간이라도 나를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또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모습과도 비교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느껴볼 작정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독서 및 복음>

 

 

1독서

 

야고보서 2,1-9
1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2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한다면,
4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5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7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8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복음

 

마르코  8,27-33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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