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루카복음

20220303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루카 9,22-25 “살면서 죽음을 만나는 방법은”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2. 3. 4. 23:17

20220303 재의 수요일 다음 목요일 루카 9,22-25 “살면서 죽음을 만나는 방법은”
 

 
 
오늘 사순 시기 둘째 날 복음은 구약과 신약을 이으면서도 동시에 엄청난 전환의 메세지를 주는 중요한 복음입니다. 이 전환이 무엇인지오늘 복음을 함께 잘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 9장 22절로 시작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고 이르셨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수난을 예고하시는 장면입니다. 당신 예수님과 제자들을 보면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스타트업 업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혁신적인 새로운 사람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융성하고 왕성하고 성공하는 이미지를 목적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1독서 처음에도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라고 했습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생명은 행복으로 죽음은 불행으로 연결됩니다. 생명은 행복, 죽음은 불행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배척과 수난과 죽음을 겪을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죽음을 택하셨나요 아니면 생명을 택하셨나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저는 죽음으로 생명을 택하셨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직접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세상 사람들이 가졌던 세계관을 바꾸는 아주 혁신적인 전환이었습니다. 
 
구약의 계약에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땅과 자손과 복이었습니다. 여기서 죽음은 종착지였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계약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종착지가 아니라 생명을 향하는 길이라는 세계관의 전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역사적 전환이 시작이 되는 지점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예고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어서 예수님은 그 전환의 비밀을 바로 밝혀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 묵숨을 버리는 것,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 바로 이 것이 그 전환의 비밀을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죽음을 만날까요? 날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특별히 이 사순시기에 말입니다.
 
저는 몇 일 전 전화통화한 것이 떠올라 이런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일 전에 오랫동안 무거운 병과 겨루어 오고 있는 어르신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신부님, 우리 환우들은 이렇게 하루하루 죽음과 절실하게 싸우면서 지내는데, 주변 사람들이 직장 걱정, 아이 걱정, 주식 걱정 이런 얘기 하는 것 들으면 참 아기들 투정부리는 것 처럼 들려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묵상 중에 이 대화를 돌아보며 깨닫게 되는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학생들에게 목숨과 같은 절체절명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네 성적, 친구 일겁니다. 군인들에게는요? 네 휴가, 전역이죠. 우리는 각자가 처한 삶에서 자신만이 갖고 있는 죽음의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나에게는 죽음의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머리 좋은 학생이라 머리 나쁜 학생보다 편한 삶을 산다고, 또 후방에 있는 군인이라 전방에 있는 군인보다 편한 삶을 산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묵상 중에 깨달은 첫번째 생각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에서 처한 절실한 죽음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도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 사순시기 동안에 묵상하고 실천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면서 어떻게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그 전화통화를 통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사실 병으로 오늘 죽음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가진 죽음의 무게와, 오늘 내가 처한 삶 안에서 가진 죽음의 무게가 정말 그렇게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주사 한 번 제 때 맞지 않으면 죽게되는 사람이 가진 죽음의 무게와, 성적이 떨어지면 엄마한테 죽게될 학생이 가진 죽음의 무게가 꼭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차이가 제가 깨달은 두 번째 생각입니다. 아무리 내가 오늘 나에게 절실한 죽음의 문제를 갖고 사순시기를 열심히 묵상하고 실천해 가더라도, 내 주변에는 항상 나보다 더 무거운 죽음의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겸손함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는 나의 가장 내밀한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우리의 기도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나누어 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순시기 동안 만나 나가는 죽음의 문제도 우리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이것 역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나누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순시기 죽음을 만나는 자세는 절실해야 하고, 동시에 우리 죽음의 열매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나누어 지되 겸손되이 나누어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역사적 전환이 시작되는 중요한 지점에 서서, 그 전환을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사순시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함께 나의 삶에서 내가 처한 죽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그 죽음을 통해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함께 그 죽음의 길을 걸으며 각자가 얻는 생명의 은총을 겸손되이 가족과 이웃과 공동체와 나누며 함께 이 사순시기를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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