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루카복음

20241112 연중 32주 화 묵상강론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루카 17,7-10 [ 바라지 않는 마음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 11. 11. 22:31

20241112 연중 32 묵상강론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루카 17,7-10 [ 바라지 않는 마음 ]

 

 



며칠전 수련소가 있는 강화도로 갔었습니다. 대성전 지하 주방의 수도꼭지에 온수기를 설치하려고 간 것입니다.
곧 겨울이 오고, 다음 달 부터 첫 토요일 강화도 신심미사에서 다시 설거지를 하기로 봉사자분들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점심시간에 접시 대신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부터 봉사자 분들이 다시 기꺼이 설거지 수고를 할테니 환경을 생각하자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여러 상황을 살피고 조정한 끝에 다음달 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주춤하게 되었지만, 강화도 신심미사에서는 약 삼 백명 분의 식사를 챙겨 드렸었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배식을 하고 그 모든 설거지를 단체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끝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 제가 학생 때 처럼 함께 할 수 있는 학생 수사님들이 많이 있는 것도, 미사에 함께 오는 신부님들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환경과 수도회 그리고 신심미사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시겠다는 봉사자 분들의 마음씀씀이가 아주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위해 제가 할 일을 미리 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온수기 설치입니다. 그곳 지하 주방에는 온수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 하러 간거 지만 수련소에 방문한 김에 수련장 신부님과 동반 신부님 그리고 수사님들과 함께 점심도 먹고 들어와서 탁구도 쳤습니다. 수련 수사님들은 제가 신학원장으로 있을 때 동반하던 형제들인데,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이 탁구여서 공동체 체육으로 자주 했었고 레슨도 받게 도와줬습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칠 수 있을 만큼 많이 늘었습니다.

온수기 설치를 하고 필요한 이런 저런 일들을 준비하고 확인한 뒤 피곤하지만 좋은 기분으로 본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가끔은 지겹게도 느껴지던 강화도의 논밭들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새로웠습니다. 올해도 한 번 다 바치고 넉넉하게 겨울 논밭으로 움츠려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그 날의 순간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가만 보면 설저기 봉사자분들부터, 그날의 수련장 신부님, 동반 신부님, 수련자 수사님, 피정집 형제님, 저, 그리고 강화도의 논밭 까지도 모두가 무언가 열심하고 있는 고마운 이 들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세상을 위해. 그리고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누군가에게 내가 한 일에 대해 고마워 해달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을. 강화도의 논밭은 심지어 말도 못하지요.

주인이 고마워하시길 바라는 종의 마음은 절대 그날의 우리처럼 또 그날의 강화도 풍경처럼 평화로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 마음에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커지면, 그 마음은 그만큼 자주 실망이나 섭섭함이나 미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매일 체험하면서 삽니다.

삶에 던지는 나의 노력과 애쓰는 나의 마음이 평화로운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지 않고, 지치지 않고, 함께 애쓰는 누군가와 같이 웃고 떠들며, 내색하지 않고, 한 번 다 바치고 때가 되면 다시 겨울 논밭으로 수줍게 움츠러들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수고했어요 그대들. 고마워요.


여러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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