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2 연중 32주 화 묵상강론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루카 17,7-10 [ 바라지 않는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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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수련소가 있는 강화도로 갔었습니다. 대성전 지하 주방의 수도꼭지에 온수기를 설치하려고 간 것입니다.
곧 겨울이 오고, 다음 달 부터 첫 토요일 강화도 신심미사에서 다시 설거지를 하기로 봉사자분들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점심시간에 접시 대신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부터 봉사자 분들이 다시 기꺼이 설거지 수고를 할테니 환경을 생각하자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여러 상황을 살피고 조정한 끝에 다음달 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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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로 주춤하게 되었지만, 강화도 신심미사에서는 약 삼 백명 분의 식사를 챙겨 드렸었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배식을 하고 그 모든 설거지를 단체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끝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 제가 학생 때 처럼 함께 할 수 있는 학생 수사님들이 많이 있는 것도, 미사에 함께 오는 신부님들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환경과 수도회 그리고 신심미사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시겠다는 봉사자 분들의 마음씀씀이가 아주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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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분들을 위해 제가 할 일을 미리 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온수기 설치입니다. 그곳 지하 주방에는 온수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 하러 간거 지만 수련소에 방문한 김에 수련장 신부님과 동반 신부님 그리고 수사님들과 함께 점심도 먹고 들어와서 탁구도 쳤습니다. 수련 수사님들은 제가 신학원장으로 있을 때 동반하던 형제들인데,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이 탁구여서 공동체 체육으로 자주 했었고 레슨도 받게 도와줬습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칠 수 있을 만큼 많이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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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기 설치를 하고 필요한 이런 저런 일들을 준비하고 확인한 뒤 피곤하지만 좋은 기분으로 본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가끔은 지겹게도 느껴지던 강화도의 논밭들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새로웠습니다. 올해도 한 번 다 바치고 넉넉하게 겨울 논밭으로 움츠려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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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그 날의 순간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가만 보면 설저기 봉사자분들부터, 그날의 수련장 신부님, 동반 신부님, 수련자 수사님, 피정집 형제님, 저, 그리고 강화도의 논밭 까지도 모두가 무언가 열심하고 있는 고마운 이 들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세상을 위해. 그리고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누군가에게 내가 한 일에 대해 고마워 해달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을. 강화도의 논밭은 심지어 말도 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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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고마워하시길 바라는 종의 마음은 절대 그날의 우리처럼 또 그날의 강화도 풍경처럼 평화로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 마음에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커지면, 그 마음은 그만큼 자주 실망이나 섭섭함이나 미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매일 체험하면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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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던지는 나의 노력과 애쓰는 나의 마음이 평화로운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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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지 않고, 지치지 않고, 함께 애쓰는 누군가와 같이 웃고 떠들며, 내색하지 않고, 한 번 다 바치고 때가 되면 다시 겨울 논밭으로 수줍게 움츠러들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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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수고했어요 그대들. 고마워요.
여러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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