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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4 재의 수요일 묵상강론 마태 6,1-6.16-18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사순시기 회개와 전환의 방법 세가지”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지금 글을 쓰는 저도 이마에 재를 얹고 있어요. 오늘 미사 가신 분들 중에는 성당에서 나오면서 털고 나오는 분도 계실꺼고, 또 오늘 미사에 가지 않는 분들도 계시겠죠. 실은 저도 수도원 오기 전에는 재의 수요일 미사에는 잘 가지 않았어요. 오늘 이마에 얹은 재는 아마 오늘 중에 아니면 늦어도 내일 중에는 없어지겠지요. 그래서 이 재가 의미하는 것은 뚜렷합니다. 세상의 것들과 우리의 생명이 덧 없는 것이라는 것과,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 재는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래서 지상에서의 잠깐의 여정이지요. 동시에 우리는 이 재를 보면서 반대로 영원한 것으로 눈을 돌리게도 됩니다. 그리고 특히 하느님께서 그 영원 속에 약속해주신 용서로 향하게..

20240117 [ 엄마의 삶에서 슬픔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

20240117 [ 엄마의 삶에서 슬픔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 ⠀ 상담과 심리학은 우리 엄마의 삶을 역기능 가족에서 희생자 역할로 규정한다. 우리 엄마의 삶은 왜곡된 인식들로 점철된 삶이며, 규정하지 못한 감정에 휘둘리는 삶이고, 주체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속박된 삶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상담과 심리학과 겨루고 있다. ⠀ 내가 만나는 세상 엄마들의 삶은, 아픔과 눈물이 쌓여 굳어진 돌가슴이고 무시와 푸대접이 일상이 되어 무뎌진 돌마음이다. 죽어가는 아기를 품에 안고 나에게 와 축복을 해주면 아이가 낳을꺼라며 간이 끊어질 듯한 눈으로 하는 기도의 부탁이다. 종교가 달라도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내 앞에서 세상에 단 하나 아이만이 존재하는 듯 바라보며 기다리는 조용함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엄..

20240116 [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구에게도, 또 그 누구에게도. ]⠀

20240116⠀[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구에게도, 또 그 누구에게도. ] ⠀ “고객님, 그냥 나갔다 오실 때 1회용품 사와서 쓰시는게 나을 겁니다. 남자분들끼리 설거지 하기도 힘들꺼고요.” “네.” ⠀ 펜션 주인의 말은 매우 친절했다. ‘네’ 라고 하지 않으면 마치 내가 나쁜사람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 정성을 가득 담은 말이었다. 숙소의 주방 찬장을 열자 갖가지 크기와 용도의 그릇들이 한 사람이 쓸 법한 분량으로 가지런히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놓여진 모양새나 크기의 조합이 마치 전시장에 전시라도 된 듯 인상적이었다. 정성은 여기에서도 묻어났다. 그래서 이 그릇들이 잘 쓰여지지 않길 주인장은 바랬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는 남자만 세 명. 겉으로 보기에 설거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

20240111 놀이터에서 낙서하기 [ 그에게는 비탄도 눈물도 없이 강인하게 자기 삶을 꾸려가는 힘이 있었다. ]

[ 그에게는 비탄도 눈물도 없이 강인하게 자기 삶을 꾸려가는 힘이 있었다. ] 그에게는 비탄도 눈물도 없이 강인하게 자기 삶을 꾸려가는 힘이 있었다. ⠀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그의 삶에서 그는 비탄하고 눈물을 쏟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그도 지금처럼 되기 전 옛날에는 나처럼 비탄에 빠져 눈물로 점철된 날들을 보낸던 적이 있진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누구누구는 어릴 때부터 이미 성인같았다던가 누구누구는 항상 성인같이 산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반드시 있다. 그럼에도 그를 보면 가끔 이런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다. ⠀ 그의 어린시절을 나는 가끔 짖꿋은 마음으로 상상해 본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건 솔솔한 재미가 있..

20240110 [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다.] (이 문장은 스가 아스코의 글에서)

20240110 [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다. ] ⠀ “영상통화 되시나요?” ⠀ 저녁 8시. 이제 꽤 모인 듯, 성이에게서 톡이 왔다. ⠀ 경기가 풀리며 나는 오랜 만에 회사에서 받은 대졸 신입사원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아는 후배의 친형, 나이가 어리지만 선배, 동기, 그리고 내 뒤이 이어 입사한 동생들을 만났고, 젊고 푸르렀던 우리는 회사에서도 기숙사에서도 술집에서도 게임방에서도 함께였다. 웃고, 울고, 싸우고, 격려하고, 아파하고, 행복해하며 찬란하고 고달픈 신입사원의 시간을 함께 했다. ⠀ 추억이 많다. 어느날 영어 이야기를 하다가 영어 공부가 필요한 동생들을 위해 영어 스터디를 만들었다. 우리는 스터디를 하기 위해 새벽에 1시간 일찍 출근했다. 스터디 강의 준비는 내 ..

20240109 연중 1주간 화요일 묵상강론 마르 1,21-28 [ 내가 만나는 연중시기의 두 가지 의미 ]

20240109 연중 1주간 화요일 묵상강론 마르 1,21-28 [ 내가 만나는 연중시기의 두 가지 의미 ] 성탄시기와 공현 대축일을 지나와 우리는 어제 주님 세례 축일부터 연중 시기를 시작하고 있니다. 오늘은 연중 제 1주간 화요일입니다. 연중시기가 몇 주까지 있는지 아시나요? 34주간까지 있습니다. 가톨릭 전례력에서 연중 시기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성탄시기와 부활시기에서 이어 집니다. 저는 이 시기 동안 기도할 때에 수도생활을 하며 조금씩 알게 된 두 가지 연중시기의 의미를 기억합니다. 첫째, 연중시기는 소박하지만 차근차근 성장해 가는 시기입니다. 연중 시기가 시작 되기 전에는 갖가지 축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참 숨가쁘게 달리다 보면 어느 새 연중시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이 연중..

20240104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묵상강론 요한 1,35-42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카와바타 야스나리) ]⠀

20240104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요한 1,35-42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카와바타 야스나리) ]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 지난 해 독서모임 마지막 달 12월의 책 설국의 첫문장입니다. 이 두 문장은 일본 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의 도입부라고 칭송받고 있다고 합니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로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습니다. ⠀ ... ⠀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펼쳐지는 완전히 다른 눈의 세상, 아직 짙은 어둠의 무게에 눌려 앉은 듯 어둠 아래로 펼쳐져 있는, 아니면 어슴프레 기차의 빛이 닿는 선로로 빛나는 눈을 창 너머로 보고 있다는..

20231231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묵상강론 루카 2,22-40⠀[조카가 생기면서 달라진 기도]

20231231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묵상강론 루카 2,22-40 [조카가 생기면서 달라진 기도] ⠀ 다른 사람이 되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입장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이 지혜는 어떻게 더 완전한 기도를 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에 대해서도 힌트를 줍니다.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 완전한 기도를 하고 싶어하고 노력합니다. ⠀ 그것을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더 그러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이런 저런 실수를 하며 삽니다. 그리고는 엉뚱한 기도를 해댑니다. ..

이게 다 계란후라이 때문이야

[이게 다 계란후라이 때문이야] 몇일 전 회의가 길어졌고 수도원 안에서 식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밖으로 나가 김치찌개 집에 갔어요. 지난 번에 갔을 때 처음 보는 이모님이 계셨는데 계란후라이를 공짜로 구워 주셨어요. 우리는 고마워서 계란찜을 추가로 시켰죠. 이번에 두 번째로 뵈었는데 오늘 또 계란후라이를 구워 주시더라구요.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3시 쯤이었어요. 손님은 아무도 없었는데 가게 안에는 락 음악이 크게 울리고 있었어요. ‘아이고 이모님 롹을 들으시네요!’ 했더니 저를 알아보시고는, ‘아니, 제가 요즘 기력도 없고 우울해서 음악이라도 크게 듣고 정신 차리고 싶어서요’ 하시며 볼륨을 줄이셨어요. ‘아이고 이모님, 마침 저도 신나는 음악 듣고 싶었어요. 볼륨 더 크게 해주세요.’ 라고 했죠. 잠시 ..

20231218 대림 3주 월요일 묵상강론 마태 1,18-24 [내 안에 커져가는 나와 맞선다는 것]

20231218 대림 3주 월요일 묵상강론 마태 1,18-24 [내 안에 커져가는 나와 맞선다는 것] ⠀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 3년 전 양성장 소임을 맡게 된 때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그 때의 걱정과 두려움과 어려움이 떠올랐던 것은 예수님을 잉태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였던 것 같습니다. ⠀ 다른 사람의 성장을 책임지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형태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주는 지는 다른 모든 일처럼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남자들은 더구나 결혼해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우리는 결코 여성들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성모님의 마음을 오롯이 알 수 없습니다. 짐작할 뿐입니다. ⠀ 그런데도 수도자나 성직자로 살수록 자꾸 만나는 유혹이 있습니다. 상담가나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