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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3 연중 30주간 금요일 묵상강론 루카 14,1-6 “당당하게 관계 맺고 사는 방법”⠀

- 당당하게 관계 맺고 사는 방법 - ⠀ ⠀ 오랜만에 걷는 가을 추수가 끝난 논 어귀로 갈색 낙엽이 바람에 떨어져 날리고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나무가 되었다가 잎이 되었다가 바람이 되었다가 낙엽이되었다가 다시 나무가 되기를 한참 했습니다. ⠀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매년 하는 전 사원 교육에 강사로 온 분들이 단골메뉴로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관계가 제일 힘드시죠?” 물론 저도 피정이나 면담을 동반해드리는 동안 자주 드리는 말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관계 때문에 눈치를 보며 언제나 당당하게 살기 어렵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 문제는 이 관계의 어려움을 어떻게 만나나가야 할 것인가에 있고,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

20231102 위령의 날 묵상강론 마태 5,1 - 12 “나의 믿음, 만남, 그리고 영성”

- 나의 믿음, 체험, 그리고 영성 - ⠀ 그저께 저녁식사 시간에 제가 동반하고 있는 학생 수사님들과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학년 수사님과 함께 신학교에 다니는 평신도 분이 수업시간에 던졌던 질문이 발단이었습니다. 질문은 이랬습니다. ⠀ ‘하느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라는 구절에서 파라오가 마음이 완고해 진 것은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까?’ ⠀ 요지는 파라오가 마음이 완고한 것이 하느님의 탓인가 파라오의 탓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 ... ⠀ 우리의 대화는 자유의지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고, 과연 우리의 행동의 어디까지가 자유의지이고 어디부터가 하느님의 뜻인가 하는 문제와,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 이런 질문..

20231031 연중 30주간 화요일 묵상강론 루카 13,18 - 21 “기다림은 만나기 위한 것 만은 아니예요”

- 기다림은 만나기 위함 만은 아니예요 - 정원에 심는 겨자씨, 밀가루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누룩.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설명하신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그 중에는 ‘기다림’도 있습니다. ... 핸드폰이 없던 시절. 집을 나서기만 하면 더는 약속을 취소할 수도, 좀 늦는다고 이야기할 수도, 다와간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늦은 사람은 애닯은 마음으로 뛰었고, 기다리는 사람은 서서 하염없었습니다. 몇 시간을 기다렸냐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마음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이라는 건 그 사람을 만나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거나, 집에 두고 온 야옹이를 생각한다거나..

20231021 연중 28주 토요일 묵상강론 루카 12,8-12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

-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 - ⠀ 오늘 복음에서 10절의 말씀에 더 깊이 머물러 봤습니다. 10절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합니다. 평신도 분들은 성경 통독을 하기도 하고, 강론이나 강의를 듣고, 성경 공부모임에 들기도 합니다. 신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이 신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공부하고 논문을 쓰며 연구합니다. ⠀ ... ⠀ 그건 초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치열했습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믿고 있는 거의 모든 교의는 5차 공의회 이전에 거의 확립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이..

20231016연중 28주 월요일루카 11,29 - 32 “하느님이 바라시는 표징”

20231016연중 28주 월요일 루카 11,29 - 32 “하느님이 바라시는 표징” ⠀ 복음은 표징을 원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그 시대의 그들에게 표징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들이 오래 기다리며 노력해왔던 그들의 삶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 받을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죠. ⠀ 문제는 그것이 자신들이 보기를 바라는 표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표징이 아니었던 거죠. 이들이 어리석었던 이유입니다. ⠀ ... ⠀ 오늘 여러분이 바라고 있는 표징은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보아야 여러분이 기다리며 노력해왔던 여러분의 삶이 가치롭고 틀린 것이 아니라고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어제 밤 묵상하면서 같은 질문을 저에게도 던져봤습니..

카테고리 없음 2023.10.18

20230806 연중 18주간 주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마태 17,1-9 "불공평하고 모순된 세상"

오늘 복음 장면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데리고 가셨다.”에 저는 많이 머무르게 됩니다. ⠀ 아침에 일어나서 저 세명만 산에 올라 저런 체험을 하고 왔다고 하는 이야기들 듣는 다른 제자들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 과연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공평하다고 느꼈을까요? ⠀ … ⠀ 복음 후반부에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나옵니다. ⠀ 빛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묘사됩니다. 복음사가 요한은 예수님을 빛으로 직접 표현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부활 후 갖는 인간의 특성 네 가지 중 하나로 빛남을 들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고 또 백성을 보호하시는 방법으로 성경에 나오는 것이 구름과 그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

20230712 연중 14주일 수요일 마태 10,1-7 “자기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

20230712 연중 14주일 수요일 마태 10,1-7 “자기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던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것들이 쉽게 소개된 많은 책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애니어그램, MBTI, DISC 같은 검사도 인터넷에서 손쉽게 할 수 있고, 그 내용들이 일상에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지나치게 가볍고 쉽게 스스로를 안다고 여기게 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릅니다. 그런 것..

20230703 연중13주간 월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요한 20,24 - 29 “정신이 힘들고 마음이 고달플 때 내가 하는 세 가지”

“정신이 힘들고 마음이 고달플 때 내가 하는 세 가지” ⠀ 정신이 힘들고 마음이 고달프게 느껴질 때 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 ... ⠀ ⠀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내가 마주하는 현실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서 그 중에 내게 익숙한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예상하는 것, 그리고 내게 당연한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런 것들은 항상 주변에 많이 있지만 어떤 때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지거나 커지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 두번 째로 하는 것은 나에게서 없어진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항상 주변에 있던 것들이 별로 변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나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건 나에게서 무엇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제가 자주 발견하게 되는 건 희망, 꿈,..

20230608 연중 9주 목 마르 12,28 - 34 ‘사는 사람과 방문하는 사람’

- 사는 사람과 방문하는 사람 - 광성보는 매우 역사적인 곳이자 강화도의 유명한 관광지예요. 한 켠에 바다를 끼고 이어 있는 유적지를 걸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제가 사는 신학원에서 차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가끔 산책이나 조깅의 반환점으로 삼는 곳이지요. 논밭을 가로지르며 오가는 길이 참 아름답습니다. 몇 일 전 오래 알던 수녀님들이 오셔습니다. 함께 그 곳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늦게 출발한 저는 먼저 간 그분들을 따라잡으려 혼자 광성보의 언덕길을 올랐었습니다.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웃으며 걷고 있었습니다. 햇볕 속에 웃는 소리가 이제 코로나가 끝났어, 여름이 오고 있어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 “어서 와, 무슨 사진을 걸음마다 찍니?” 할머니와 아빠와 함께 몇 ..